최강 장군(1559~1618)은 가리포진의 제59대 첨사이다.
첨사는 1598년 11월 19일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은 끝났으나
패주한 왜군들이 분을 풀지 못하고 자주 침범하였다. 그러던
중 1606년 6월 9일 왜구들이 많은 군사와 거함으로 바다를
메우고 해랑병이라 자칭하며 가리포 깊숙이 침공해왔다.
막강한 전세에도 굴하지 않고 뛰어난 기개와 용맹으로 화공법을
선용하여 석장포에서 적의 주력부대를 괴멸하고 패주한 잔병은
멀리는 장수도(사수도)까지 추격하여 완전 소탕하여 대승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척의 배나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왜구의 해적행위가 완전히 근절 되었다.
당시 대첩을 이루었던 곳은 하나의 지명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즉 넉구지, 왯등, 목왜난골, 왜난골, 왜난목, 줄왜등, 왜랭이,
석전포라고 구최강장군전되어 그날의 격전지를 입증 해 주고 있다.
이 전공으로 가성대부로 승차하고 그해 11월 2일 순천부사로 영전하였다.
그 후 곧 경상좌수사로, 충청수사, 포도대장 대열에 까지 제수되었으나
신병을 구실로 낙향하여 살았다.1618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지관을 보내어 후이 예장하였고 가리포의 어부들 수십명이
그곳 고성에서 가까운 어촌인 당항포에서 3년 상을 치루고 왔다.
이는 첨사가 재임 중 그만큼 선정을 배풀었기에 그에 대한
감사함을 3년상으로 표시한 것일 것이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한 비가 석장리에 있다.
[출처] 완도읍3|작성자 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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