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삶과 죽음 통해 인생을 말한다"
사진가 최원락 '있다가 없는' 사진집 발간.
▲ 최원락의 손 안의 자식 사진집 '있다가 없는'에 들어 있는 한 장면이다. 최원락 제공.
뭉개진 손과 발톱. 아버지의 손과 발은 오랜 가뭄 속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검버섯이 내린 손등도 마찬가지다. 곳곳이 갈라지고 파인 손등,
그곳엔 밭고랑 같은 주름이 깊게 파여 있다. 구부정한 등, 하얀 머리카락,
누군가가 부축해야만 하는 몸, 거칠 대로 거칠어진 피부 사진….
그런가 하면 죽음 그 이후의 공간과 장례식 모습도 담겨 있다.
사진가 최원락이 '있다가 없는'이란 제목의 사진집을 펴냈다.
아버지 말년의 삶과 죽음을 70여 장의 사진에 담았다.
작가는 6~7년 전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가끔 찾아뵙던 어느 날,
부친이 초췌하고 기력이 감퇴해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주제로 사진을 찍을 결심을 하게 됐죠."
이후 가끔 고향에 가서 부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곤 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부친의 죽음을 주변에 알렸더니
제가 사진을 공부하는 데 멘토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최광호 사진가로부터
아버님의 죽음을 사진으로 꼭 찍어두라는 문자가 왔어요.
처음엔 엽기적인 문자라 여기고,차마 찍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카메라를 들었죠. 가족이요? 그동안 아버지를 찍어 온 제 모습을
가족들도 보아왔던 터라, 이해하고 받아들여 줬죠."
이렇게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카메라에 담으며 작가는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들인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죠.
내 아버지의 죽음 또한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타자의 죽음이었을 뿐이죠
." 사진집 속엔 깊게 파인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마른 장작 같은 살갗,
부친이 사용하다 남기고 간 물건과 자리들이 있다. 사진집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엔 작가의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그 속에 있다.
작가의 직업은 의사다. 부산 사하구 감천동 소재 내과 원장이다.
그가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이젠 10년 남짓 됐다. 그동안 나름대로 사진 이론도 공부했다.
수차례 사진전도 열었다. 그는 "총이 그 대상을 죽이는 데 목적이 있다면,
사진은 그 대상을 이미지로 살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그의 사진 철학이다. 생존 당시 아버지의 모습부터 죽음의 의례,
그 이후 아버지의 부재까지를 담은 작가의
사진은 단순히 부친의 모습을 보존하려는 기록과 재현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한 방식인 사진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의 인생을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의 이별이 안타까워 사진을 찍었다는 작가. 그는 이번 사진집을 통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는 항상 죽음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죽음을 대개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죠. 하지만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 말고 죽음과 마주하며, 죽음은
언제든 나에게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주제로 절절한 사부곡(思父曲)과 삶의 철학을 흑백 사진으로 토해낸 거다.
정달식 기자.2012-09-24 [09:33:48] 부산일보 문화 2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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