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계족산
계족산(鷄足山) 889.6m.
소재지: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덕포리 연화리.
산행일시:2018년 6월27일(수요일) 날씨:맑고 구름.
산행코스:왕검성주차장⇒정양산성⇒삭도쉼터⇒참곶봉⇒계족산⇒주차장.(원점회귀산행)
산행시간:3시간26분(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GPS):7.17㎞.
부산 (동래)에서 07:30분에 출발하여 부산-대구 고속도.경부 고속도.중앙 고속도.
남제천IC를 나와 산행 시작점인 왕검성 주차장에 도착하여 11:37분.산행을 시작한다.
(남제천IC에서 산행시작점인 왕검성 주차장까지 약 43㎞.35분소요)
↓.오늘 산행 출발점인 왕검성 주차장에 도착한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33)
↓.11:37분.왕검성 주차장과 영월화력 발전소 사이 임도를 따라가며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를 조금가다 바로 받길 좌측으로 들어선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계족산 산행 안내도가 있다.
↓.산행 안내도를 지나 조금 올라서면 정종대왕태실비가 있다.(정종대왕태실비 안내판)
↓.정종대왕태실(正宗大王胎室)라고 새겨져 있는데 글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종대왕태실비를 지나 삼거리 갈림길에서 등산로 방향은 정양산성에
들리지 않고 계곡을 따라 바로 삭도쉼터로 올라가는 지름길 등산로이다.
우측(화살표) 정양산성 방향으로 산행을 한다.
↓.영월 정양산성(正陽山城)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는 안내판.
↓.외성(外城)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는 안내판을 지나고.
↓.정양산성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고 발굴작업으로 산길을 통제한다는 내용이다.
우회로 산길을 내주고 발굴작업을 하여도 될것 같은데 국립공원이나 관할관청 모두 ? 있으면
제일먼저 하는것이 산길 통제하는 것이 첫번째 일이다.
↓.산성길을 따라 올라간다.정양산성(正陽山城.왕검성)
정양산의 430m-565m 높이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석성으로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다투던 3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고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며
내성 둘레 1060m.외성 둘레 570m로 합 1,630m.성벽 높이가 11m에 달한다.
성문은 현문식(懸門式) 사다리등을 이용하여 오르 내리는 방식으로 되어있고
왕검성이라 부르기도 한다.성내에는 우물이 있었다 하는데
산행중 우물터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서문(西門) 안내판.
↓.안내판과 나란히 있는 서문모습.
↓.북문(北門) 안내판.
↓.북문.안내판과 나란히 있는 북문 모습이고 뒤로 가야할 계족산 정상부가 보인다.
이쪽에서 바라보니 우측 참곶봉이 맨 좌측 계족산 정상보다 더 높아 보인다.
↓.정양산성에서 산행 출발지 영월 화력발전소 쪽을 내려보니
남한강이 충주호로 흘러가고 있다.발전소는 석탄을 사용하지 않고
지금은 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고 한다.
↓.영월 화력발전소 맞은편에 국지산이 보이고 산행을 마치고
남한강 다리밑에 몸을씻은 팔흥교도 보인다.
↓.정양산성 뒤로 지난번 산행을 한 시루산과 발산(2017년 12월5일)이 보이고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도 우뚝하다.
↓.정양산성 끝지점이 바로앞에 보이고.
↓.정양산성에서 가야할 계족산을 바라보니 산 봉우리가
울퉁불퉁하고 닭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양산성을 내려서니 여기도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다.새벽에 일어나
차를 4-5시간 타고 달려간 나에게 반갑지 않는 표지판이다.
↓.정양산성 출입금지 표지판에서 삭도쉼터까지 작은 산봉우리도
확인하면서 1번봉을 지나간다.(12:28분)
↓.2번봉(12:30분) 작은 산봉도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지나간다.
↓.3번봉(12:33분)
↓.4번봉(12:36분)
↓.마지막 봉 5번봉(12:40분).삭도쉼터까지 1.2.3봉인데
5봉이 계산된다.2개봉은 무명봉.
↓.삭도쉼터에 내려서고.
↓.12:43분.삭도쉼터에 내려서니 강철선을 이용하여 석탄을
운반한 내용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다.(중국 장가계는 케이블카를
삭도(索道)로 표기 하였는데 여기가 대한민국 케이블카 원조)
↓.삭도(索道).형식:단선순환식(單線循環式).
(운반능력:50톤/시간 운반함 28개x0.7톤/개)
(운반거리 1.7㎞.발전소→계족산).(용도:석탄재운반)
↓.12:50분.삭도쉼터에서 된비알을 올라 4봉(657m)에 올라선다.
↓.4봉에서 다시 내림길로 내려서고.
↓.정상 1.7㎞를 남겨둔 이정표.
↓.13:10분.5봉(조망봉)에 올라서니 등네미님이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5봉에서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태화산이 전면에 보인다.
↓.남한강 따라 고씨굴교가 희미하게 보이고 좌측은 마대산.
우측 소백산 능선은 구름에 묻혀있다.
↓.전면 응봉산과 뒤로 망경대산.
↓.13:25분.계족산에서 가장 뾰쪽히 솟아있는 6봉(참곶봉)에
도착하니 주위 조망이 없다.
↓.13:32분.회원님 한분이 점심을 먹고있는 7봉에 도착한다.
↓.13:40분.8봉에 도착.영월군 산행지도에는 8봉을 참곶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두위지맥(斗圍枝脈) 백두대간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의 만항재(1330m)에서 서쪽으로
분기 남쪽으로 오동천과 북쪽의 지장천을 가르며 백운산,두위봉,응봉산등을 지나
끝머리에 계족산을 일구고 영월읍 덕포리 동강과 서강의 합수지점에서
그맥을 다하는 48.4km의 산줄기.
↓.8봉에서 다시 안부로 내려서고.
↓.13:46분.계족산(鷄足山) 정상에 올라서니 정상석과 삼각점이
나란히 있고 주위 조망은 꽝이다.(잠시휴식)산 모양이 닭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이라 전하며 또 정양산(正陽山)으로도 표기한다.
↓.정상에서 인증.
↓.하산길에 잠시 시야가 트이면서 영월읍 전경이 전면에 보인다.
↓.영월읍 우측으로 봉래산과 발산 시루산이 보이고.
↓.지나 올라선 정양산성 뒤로 보이는 태화산.
↓.지나온 산길 정양산성에서 삭도쉼터까지 3봉을 확인하기 위해
등산로를 비집고 들어가 보았으나 정양산성에서 삭도쉼터까지 올라선
산길은 보이지 않고 6봉(참곶봉)만 쫴끔 보인다.
↓.이정표.
↓.이정표.정양리 쪽으로.
↓.가래골에 물이없어 땀에젖은 몸을을 씻지 못하고 내려간다.
↓.여기서 받길로 내려서고.
↓.임도를 만나고.
↓.가래골천 표지판을 지나고.
↓.우측에 영월 화력발전소 철망을 따라 내려간다.
↓.산행 시작점에 있는 산행 안내도가 맞은편에 보인다.
↓.15:03분.산행시작점인 왕검성 주차장에 도착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고 팔흥교 아래로 몸을 씻으려 간다.
↓.산행종점 쪽에서 바라본 계족산 정상부.
↓.산행 개념도.
↓.몸을 씻은 팔흥교 아래 남한강 강물은 깨끗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물에 몸을 담구고 세수도 한다.팔흥교를 지나 팔괴교에서도
등산로가 있는 태화산이 전면에 보인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령포 전망대에 들린다.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산행종점 왕검성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16:41분.청령포 전망대로 출발하여
16:52분.청령포 전망대에 도착하여 청령포 전망대에 (휴식시간 15분) 올라서 보고
17:07분.부산으로 출발하여 가다가 회원님 한분이 승차하지 않아 청령포
전망대로 되돌아 가 회원님을 태우고 17:59분.다시 청령포 전망대를
출발하여 부산 교대역 도착은 21:19분이였다.
↓.왕방연(王邦衍) 시가 적혀있는 표석(標石)
천만리 머나먼 길에(千里遠遠道) 고운님 여의옵고(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데 없어(此心未所着) 냇가에 앉았으니(下馬臨川流)
저물도 내안과 같아서(川流亦如我) 울면서
밤길을 가더라(鳴咽去不休)
↓.청령포에 배를타고 들어가 보지 못하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령포 전경.
(밧데리 소모로 산마루님 사진 가져옴)(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
1971년 12월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고 단종의 유배지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여있다.
단종(端宗) 1441년 7월23일(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세종30년)에 왕세손에 책봉(冊封)되었고
예문관제상 윤상(尹祥)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1450년 2월(세종32년)에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 되자 그해7월20일 왕세손이었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18일 문종이 승하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제6대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1455년 6월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上王)이 되었으며(재위가간 1452년-1455년)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 1457년(세조3년) 노산군으로 강봉된뒤 1457년
윤6월22일 창덕궁울 출발하여 7일후인 윤 6월28일 유배지인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그해 9월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눨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 하였다.(안내 책자에서)